홈 > 우당기념사업회 > 76주기 추모행사 기념사

 

 

 

 

 

 

 

 

  오늘 우리는 절세의 애국지사이시며, 순국선열이시며, 온 인류의 사표이신 우당 이회영 선생의 순국 76주년을 맞아, 다시금 선생의 숭고한 정신과 그뜻을 받들고 이어가고자 이렇게 다시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 내빈께서는 익히 아실 줄 믿습니다만, 동ㆍ서 고금을 통해서 우리의 우당선생 일가에 견줄만한 거룩한 희생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그 숭고한 정신과 희생은 가히 聖者의 경지라 하겠거늘, 아직도 우리 국민들에게 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음은 실로 부끄럽고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 우리는 정치ㆍ경제 ㆍ사회적으로 엄청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것이 비록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현상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우당선생의 정신, 즉 자기희생위에 국난을 타개 · 극복하려는 굳은 의지와 담대한 결단력을 본 받는다면,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역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진정 지금이야말로 우당정신, 우당의 사상이 절실한 때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애국동지 여러분 !

 지난해 우리는 우당선생께서 순국하신 곳이 일제의 대련 수상결찰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30여 km나 떨어진 여순 감옥 이였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습니다.

  오늘은 그 후 다시 밝혀진 몇 가지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일제는 우당선생께서 1937년 11월 17일, 대련 수상경찰서에서 “자살”하신 것으로 공식 발표했고, 당시에 유족에게도 그렇게 통보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는 “자결”하신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 이였습니다. 하지만 근자에 공개된 중국측 자료에 의해 선생께서 무참히 “피살”되셨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1990년 이후 발간된 중국 요녕성 지방 역사자료집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동북의용군 제 3군단 북평(현, 북경) 판사처 정소천(程紹泉)처장 등의 발표에 의하면, 약간의 동북의용군 장병들을 동북에 잠복시켜 항일활동을 조직하도록 파견한 적이 있었다. 그 중 손요조(孫耀祖) 등 40 여명이 비밀리에 해상을 통해 동북으로 잠입할 때, 대련 일군 수상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중 3명만 장춘으로 압송된 외에 나머지 사람들은 여순 감옥에서 모두 살해당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아울러 당시 요녕성 정치협상회 부주석인 조광적(趙光迪)의 다음과 같은 증언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 피살당한 사람들 중 조선인 이회영도 있었다.”

  이 증언으로 해서 우당선생께는 “자살”하신 것이 아니라 일본경찰에 의해 “피살” 되셨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졌다 하겠습니다.

  또 당시 가족이 선생의 유골을 여순 감옥이 아니라 대련 수상경찰서에서 인수하게 된 경위도 명백해졌습니다. 즉 일제는 단순 피의자인 선생을 무참히 살해해 놓고 그 증거를 은폐하기위해 시신을 수상경찰서에 보내어 따님에게 얼굴부분만 보여주고, 서둘러 화장해서 유골을 인계한 후 대외적으로 선생 스스로 "자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여순 감옥 박물관 측에서는 내년 3월, 그 곳에서 순국하신 안중근 의사, 이회영 선생, 신채호 선생, 이렇게 세분의 흉상과 유품들을 모시는 전시관을 개설하여 일반에게 공개할 계획임을 알려 왔습니다.

  한편 지난 1년간 저희 기념사업회와 기념관에서 추진해온 몇 가지 사업에 대한 보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작년 12월 28일, 지난날 우당 선생과 여러 형제분들이 태어나셨고, 또 어린시절 뛰놀며 오르내리셨던 서울 명동 옛 집터에서 을지로 입구로 내려오는 폭 6m, 기리 205m의 유서 깊은 도로를 “명동 우당길”로 선포하는 정식 명명식을 가졌습니다. 중구청의 주관으로 행해진 이 행사에는 정동일 구청장을 비롯한 구의회 의장 및 임원들, 그리고 그 지역 유지들과 이종찬 관장 내외분과 이종걸 의원을 비롯한 유족과 저희 회원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지난날 중국 땅에서 “남화한인청년동맹”을 조직, 1931년 11월, “흑색공포단”을 결성해서 일제 고관암살, 일제 관공서를 파괴하는 등 맹렬히 항일 투쟁하셨던 심용철 선생과, 1900년도 황해도 장연 태생으로 최창한, 이기춘, 김경선 동지들과 “독립단”을 조직, 군자금 모금에 활약했고,“의열단”에 입단, 나석주 의사 의거에 가담하여 14년간이나 복역했던 이승춘 선생, 그리고 1870년에 출생하시어 왕산 허위 선생과 의병을 조직 항쟁하셨고, 신민회 조직에 참여 부흥학교를 설립하고, 만주 독립군 기지 설립에 국내 지원, 6.10 만세 운동에 참여, “조선교육협회”를 설립해 부회장을 역임하시고 수차례 옥고를 치르신 유창환 선생 등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분들의 영정을 추가로 제작하여 본 전시관에 전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금년에도 3.1절에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초청하여 본 기념관을 비롯한, 국내 현충시설 현장학습을 실시하였으며, 3.1절과 8.15광복절을 전후해 1개월간씩 본 우당기념관에서 독립운동 사진 자료를 교체하여 전시회를 가진바 있습니다. 또한 지난 8월에는 2천 3백여만 원을 들여 본 기념관 천정과 내벽 도장공사 및 화장실 개보수공사를 완료하였음도 보고드립니다.

  내년도에는 지난날 우당 선생과 뜻을 같이 하시어 아나키스트운동을 해 오신 애국지사님들의 논문이나 저서 기타 글들을 수집하여 전집으로 발간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 우당 장학회에서 지원해 오던 학술연구비를 가칭 “우당상” 또는 “우당학술상”제도로 전환해서 시행하는 문제도 숙고 중에 있음을 말씀드리면서 여러 회원님의 고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끝으로 공ㆍ사 다망하신 가운데 이처럼 귀한 시간을 내시어 왕림해 주신 내빈 여러분과 항상 변함없이 뜻을 같이하시어 우당장학회와 본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밀어 주시는 회원·유지 여러분께, 그리고 늘 실무를 맡아 애쓰시는 본 회 윤홍묵 상임이사를 비롯한 직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아울러 언제나 말없이 지극한 효성으로, 또 나라와 겨레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사명감으로 본 회의 어려운 뒷바라지를 도맡아 해 주시는 우당 선생의 영손(令孫) 이종찬 관장님과, 영손부 윤장순 우당장학회이사장님, 그리고 역시 영손 되시는 이종걸 의원을 비롯한 유족 여러분께 깊은 경의를 표해 마지않습니다.

  다시금, 우당 선생님 영전에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2008.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