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교육문화재단 민지(民智)를 개발하고 체육을 겸비하자

“독립을 위해서는 먼저 백성을 깨우쳐야 한다.”

희망으로 양식을 삼아 먹지 않는 밥에 스스로 배부르고 곤란을 주춧돌로 삼아 집 없는 집을 여기 지어 올리노니 이에 남만주(南滿州) 사양보(思養堡)에 여러 사람의 열띈 마음을 융합해서 하나의 단체를 조직하고, 이름하길 경학사(耕學社)라 한다.

갈아서() 비단 인명(人名)을 보전하고 살릴 뿐 아니라 민지(民智)를 개발할 것이며, 공업과 상업이 비록 다르지만 실업계로 통일해 소속시키고 체육을 겸비해서 스스로 교육체계가 있게 할 것이다.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는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자력 독립운동과 장구투쟁을 위해서 경(), 학(), 무() 단련을 도모한
최초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 결사체로서 육군사관학교의 모태격으로, 일본육사를 나온 지청천, 김경천, 신팔균 장군 등이 망명,
일본군보다도 더 강하게 훈련을 시키는 등 10년동안 3,500여명의 독립군을 양성,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해방 후 신흥대학 (현 경희대학교)으로 발전하였다.

우당 이회영 선생 어록

  • 독립을 위해서는 먼저 백성을 깨우쳐야 한다.
  •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목적이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이 또한 행복 아니겠는가.
  • 한 민족의 독립운동은 그 민족의 해방과 자유의 탈환이므로, 자유의사와 자유 결의에 의한 조직적 운동으로, 강권적인 권력 중심의 명령조직으로서 혁명운동이나 해방운동이 이루어진 예는 없다.
    (1925년 중국 천진에서 김종진(金宗鎭)과의 담론 중에서)
  • 자유와 평등의 사회원리와 민족자결원칙에 의하여 독립될 한민족의 내부구조도 반드시 이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권력의 집중을 피하고, 분권적 지방자치단체의 연합으로서 중앙정치 기구를 구성하며, 경제건설에 있어서는 재산의 사회성에 비추어 일체의 재산은 사회적 자유 평등의 원리에 모순이 없도록 민주적인 관리운영의 합리화를 꾀하여야 한다.
    그리고 교육은 물론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1925년 11월, 중국 천진에서 김종진과의 담론 중에서, 독립기념관 우당 선생 어록비)
  •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 어록
    동서 역사에 나라가 망할 때 망명한 충신 열사가 비백비천(非百非千)이지만 우당 군과 같이 6형제 가족 40여 인이 한 마음으로 결의하고 일제 거국한 사실은 예전에도 지금도 없는 일이다. 그 미거(美擧)를 두고 볼 때 우당은 이른바 유시형(有是兄)이요, 유시제(有是弟)로 구나. 진실로 6인의 절의 (節義)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 되고, 우리 동포의 절호(絶好) 모범이 되리라 믿는다.
    (우당 이회영 약전 부록 P.183,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