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독립을 위해서는 먼저 백성을 깨우쳐야한다.

난잎으로 칼을 얻다 - 소감문

송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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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05085 법학과 송창현

대단한 집안이다.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떠나는 그들의 감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서간도로 가는 마차’라는 비디오아트 설치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화면 위로 지나갔다. 나라를 잃어가며 스스로 책임감을 떠안아 독립에 모든 것을 바친 6형제에 인간적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 최고의 부자, 대대로 높은 벼슬을 차지한 명문가의 후손은 독립을 위해 2668335평의 땅을 팔고 신흥무관학교를 만들었다. 전시회 한쪽 벽면에는 학교 학생들의 이름이 씌여 있었는데, 당시 나보다도 어렸을 이들이 독립을 위해 등에 돌을 얹고 산을 타곤 하였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신흥무관학교를 만들곤 더 이상 가난할 수 없을 정도로 이틀에 한 끼를 먹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회영을 보며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과 비교되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유럽에서 나타난 개념이지만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그 개념은 지금 여기, 한국에서 제대로 실천되고 있는가? 얼마 전 누구는 자신에게 과자를 접시에 담아주지 않아 출발하려는 비행기를 리턴시키고 또다른 누군가는 라면 때문에 사람을 때렸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자신이 누리는 것이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고 가진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도덕성이 우리에겐 있는가. 얼마 전 유행했던 정의란 무엇인가는 공동체주의적인 가치관을 드러내는 센델의 책이었다. 사회가 경직되어 가면서 양극화도 점차 극복하기 힘들어지고 사회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이 커져간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대로 이 현상은 한국에서 사회 정의는 그만큼 찾기 어렵다고 사람들이 체감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시기에 이회영의 삶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았다. 감시 때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사진 한 장만을 남긴 이회영, 독립 자금을 구하려 난을 치고 팔았다는 이회영은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사회에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거울이 되었다. 나는 전까지는 인권이나 사회 운동에 대하여 유보적인 태도를 취해왔고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는 외면할 수 없는 고통과 시대의 아픔이 있음이 보이고 나 역시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보인다. 공동체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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