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우당기념사업회 > 77주기 추모행사 기념사

 

 

 

 

 

 

 

 

  존경하는 內外 귀빈 여러분 !
항상 뜻을 같이 하는 애국동지 여러분 !
그리고, 거룩하신 순국선열의 유족과 독립유공자 및 그 후손 여러분 !

  우리는 오늘 영원한 조국광복의 恩人이시며, 겨레의 久遠한 師表이신 우당 이회영 선생의 순국 77주년을 맞아, 다시금 선생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 거룩한 遺志를 받들어 이어가고자 이렇게 자리를 함께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 내빈께서는 익히 아실 줄 믿습니다마는, 동서고금을 통 털어서 이 하늘아래 우리의 우당선생과 그 일가의 희생에 견줄만한 위대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例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의 우리가 우당 이회영 선생을 다시 조명해야 하는 까닭은 그분의 사상과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입니다.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우당을 비롯한 6형제분은 전 가족 40여명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당시 상류계층이 누리던 모든 기득권의 포기였습니다. 3만석의 재산은 물론이거니와 조상제사 지내는 위토(位土)까지도 방매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련한 돈이 현재 시세로 약 800여억원 이였습니다. 이 800억원으로 서간도에 세운 가장 대표적인 시설이 바로 유명한 신흥무관학교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육군사관학교인 셈입니다. 여기서 배출된 3,500여명의 독립군이 일본 육군을 상대로 싸워 승리를 거둔 것이 청산리 전투였습니다. 삼한갑족 집안에 내려오던 800억 재산과 그 가족의 생명을 모두 쏟아 부은 대가였습니다. 여섯 형제분 중 우당을 비롯한 다섯 분은 풍찬노숙 속에 중원대륙을 종횡무진 치달으시다가 끝내 장렬하게 모두 순국하셨습니다. 광복 후 살아서 돌아온 분은 오직 다섯째이신 이시영 선생 한분 뿐 이였습니다.

 둘째, 대의 앞에 자기를 낮추는 겸손입니다.
  선생께서는 불굴의 항일운동을 그 토록 오래 전개 하시면서 한 번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혁명운동사의 굵직한 사업에는 모두 우당선생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신민회조직, 헤이그 특사파견, 신흥무관학교 설립,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아나키즘 독립운동 등, 하지만 선생께서는 어떤 일에도 이면에서 주도했지 표면에 나서거나 윗자리에 앉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셋째, 자유평등 주의의 실천입니다.
  우당 선생께서는 망명하기 전 누대에 걸쳐 내려오던 집안의 집사 및 노역일꾼비들을 모두 불러 돈을 주어 귀향방면 시키셨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일꾼들이 망명길에 따라 나서기를 원했습니다. 첫 망명지인 유하현(柳河縣)에 도착하자 선생께서는 “오늘부터 너희들은 혁명군의 일원이다”하시면서 “이제 더 이상 나를 상전으로 대하지 말고 혁명동지로 대하라”고 엄명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며칠 후 그중 한사람을 불렀더니 그 사람이 옛날 버릇대로 “ 네~이”하고 응답 하더랍니다. 우당 선생은 즉시 크게 꾸짖고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조치하셨습니다. 몸소 만민평등사상을 실천함으로써 그들에게서 노예근성을 버리게 하셨습니다.

 넷째, 장차 우리의 정치체제를 지방 중심의 자유협동주의로 나아갈 것을 구상하셨습니다.
  “만약 중앙의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하고 위임하면 지방자치체간의 자유로운 협동정신으로 상부상조가 된다. 또 지방자치체는 인접국의 지방자치체와 교류 협력하게 되고 세계 여러 협동체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일본제국주의나 일본 국수주의를 반대하여 싸우는 것이지, 결코 일본인민이나 일본의 지방자치 정신을 배격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의 이런 사상은 일찍이 1920년대 북경에서 중국의 사상가이며 대문학가인 루쉰(魯迅)과의 토론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근 100년 전에 이미 오늘날의 지방자치제의 자유협동주의를 이상으로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처럼 위대한 선생의 행적을 조감하면서 과연 우당선생께서 단순히 우리 조국의 독립과 우리 민족의 자유만을 위해 그처럼 줄기차게 투쟁을 하신 것이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제의 조국 침탈이 곧 인류의 보편적 가치 즉, 인간의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파괴하는 반역사적, 반문화적, 만행이기에, 또 그것이 인류의 지성으로 용납 못할 사악과 불의이기에, 인간 양심의 명령으로 그처럼 서릿발처럼 무섭게 항거하셨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선생께서 끝까지 아나키즘을 추구하신 깊은 뜻이 바로 있지 않았나 감히 유추해 봅니다. 우당선생께서는 개인의 자유와 경제생활의 유대를, 그래서 자본주의의 효용가치와 사회주의의 평등가치를 함께 포용하는 중용의 이념을 지향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선생께서는 당신 조국의 자주독립을 훨씬 넘어서 동양평화, 세계평화, 전체 인류의 복지까지를 아우르는, 그래서 강자와 약자가 함께 어울려 공생공영하는 이상사회의 건설까지 달관하신 투철한 사상가요, 철인이요, 聖者의 경지에 이르신 분 이셨습니다. 지금까지 선생을 우리나라의 애국지사요, 순국선열로만 여겨온 우리의 단견과, 편견이 새삼 부끄럽고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생의 이처럼 크나큰 사상과 철학을 더욱 깊이 연구·천착하여, 근대 인도의 “간디”翁 이상으로 온 세계인이 다 함께 받들고 우러르는 聖者로서의 우당선생을 새롭게 定立 해나가야만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선생께서 이룩하신 업적뿐만 아니라, 구상하셨던 엄청난 “생각”에까지 우리의 손길과 연구가 미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사람이 한평생에 이룩할 수 있는 업적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큰 뜻을 지닌 위대한 사람의 생각만은 時·空을 초월하여 온 우주를 종횡으로 넘나들 수 있는 법이니 우당선생의 진면목은 실로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한편, 지난해 예정계획으로 말씀드린바 있습니다마는, 선생께서 순국하신 여순구감옥 박물관에 기존 안중근의사의 흉상과 함께 우당선생과 단재 신채호선생의 흉상 및 유품들을 모시는 전시관이 완성, 금년 6월 현지에서 정식 개관하였음을 보고 드립니다. 그리고 지난 7월 3일 현 정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직접만나 용산의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그 어느 곳에라도 최소한 현재의 도산공원 정도의 “우당시민공원”을 조성해 줄 것을 제반자료를 건네면서 간곡히 당부한바있습니다. 이번만은 반드시 우리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회원동지 여러분의 각별한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해마다 공·사 다망하신데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왕림해 주신 내빈 여러분과, 항상 변함없는 정성으로 우당장학회와 본 기념사업회를 도와주시는 회원·유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아울러 언제나 극진한 효성과 조국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으로 본회와 우당장학회의 큰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우당선생의 사손(嗣孫) 이종찬 관장님과, 영 손부 윤장순 우당장학회 이사장님, 그리고 영손 되시는 이종걸의원을 비롯한 유족여러분께 깊은 경의를 표해 마지않습니다.

  다시금, 우당 선생님 영전에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2009.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