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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차 우당역사문화강좌 보도자료_한홍구 교수 강좌

woo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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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차 우당역사문화강좌 보도자료

우당역사문화강좌, 한홍구 교수 초청, “독립운동의 사상적 배경”강좌

우당기념사업회(회장 홍일식)에서는 지난 4월 7일(금) 오후 서울역사박물관 강당 에서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를 초청하여 “독립운동의 사상적 배경-강화학파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제52차 우당역사문화강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는 김영종 종로구청장과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회 상임대표, 보훈단체 임원 등 250여명이 참석하여 차분한 분위기에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한홍구 교수는 이날 강좌에서 “강화학파는 소론 명문가의 학풍으로 강화도를 중심으로 조선후기에 정제두(鄭齊斗)선생을 비롯한 양명학자들이 200여 년간 형성해 온
학맥“이라고 설명했다. 강화학파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는 영일 정씨 정제두 집안
의 정원하, 전주 이씨 덕청군파의 이광사와 이건창, 평산 신씨 신대우 신작 집안의 신익희, 동래 정씨 정동유 집안의 정인보, 풍산 홍씨 홍양호 자손 홍승헌, 경주 이씨 백사공파 이회영, 이상설 등“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 당했을 때, 조정에서 국상을 반포하지 않고 폐비의 칙령을 내리자, 강화학파 홍승헌, 이건창, 정원하는 함께 대궐 앞으로 나가 “어찌 국모가 시해되었는데도 그 원수를 갚지 않겠느냐?”고 상소를 올려 을미의병의 단초가 되었다고 말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당시 양반의 의식주도는 처변삼사(處變三事)라고 하여 나라를 떠나거나, 자결하거나 또는 토적(討賊)하려고 의병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들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강력한 강박관렴으로 자결하고 망명하고 거병을 한 것이다. 경술국치 직후 황현의 자결, 해방 직전 황현의 동생 황원의 자결, 이건승, 홍승헌, 정원하의 망명과 순국, 1917년 보재 이상설의 죽음, 이회영 6형제가 황도촌에서 이건승 등과 만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한 것이전형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강화학파의 특징으로 “사회개혁 보다는 철저한 보수적 세계관에 따라 민족자존을 지키려는 주체적 개화사상”이라고 말하면서, 20세기 한국 인문학의 최고의 명문이라는 민영규(閔泳珪) 선생의 ‘강화학 최후의 광경’을 인용하여 “강화학파의 장엄한 죽음의 행렬 속에서 세상의 변화에 끝까지 책임지려는 마지막 보수주의들의 의리를 볼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사)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_02-734-88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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