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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방송가 신흥무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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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 항일 독립운동 전사 양성 신흥무관학교

부산일보 2011-8-11

한일 강제병합 이듬해인 1911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만주 산골 오지에 무장 항일 독립전쟁기지가 건설된다. 1911년 6월 10일, 옥수수 창고에서 시작된 독립군 신화, 신흥무관학교.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총을 든 대한제국의 청년들, 그들은 어떻게 무장 독립전사로 키워졌는가.

KBS1TV 역사스페셜은 11일 오후 10시에 설립 100주년을 맞은 무장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 신흥무관학교의 흔적과 자취를 추적한다.중국 지린성 통화현 합니하. 여느 농촌 마을과 다름없는 이곳은 100년 전, 최정예 독립군을 길러 낸 역사의 무대였다. 하지만 오랜 여정 끝에 현장을 찾은 역사스페셜 제작진은 물론 동행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허탈하고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미 중국 땅이 되어버린 그곳에 우리 역사의 현장임을 알 수 있는 흔적은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만주 무장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신흥무관학교 터는 잊혀가고 있었다. 오직 옛 기억을 간직한 주민만이 이곳이 역사의 현장이었음을 어렴풋이 증명해주고 있다. 1910년 겨울, 국내 최대 규모의 항일 비밀 조직 신민회는 외국 독립군 기지 건설을 계획한다. 노선은 대일 무장독립투쟁, 그 무대는 중국 만주벌의 서간도. 국내에서 자행되는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을 피해 외국으로 눈을 돌린 전략적 선택이었다. 중국 토착민의 경계와 일본의 감시 속에 1911년 6월, 허름한 옥수수 창고에서 신흥무관학교가 문을 연다. 교육과 훈련은 비밀리에 진행됐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산속 연병장에서 철저한 군사 교육이 실시됐다. 우여곡절 끝에 독립전쟁기지를 건설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만주의 혹독한 추위와 부족한 식량이 문제였다. 그들에겐 학교생활 자체가 투쟁이었다.

역사스페셜은 신흥무관학교의 모습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영농교육 사진을 통해 당시 천연 요새였던 교사를 3D로 복원하고, 학생들의 치열하고 혹독했던 훈련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1-08-16 17: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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