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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우당 이회영선생 순국77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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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주최 17일 열어

독립운동에 평생을 헌신한 우당 이회영선생의 순국 77주기 추모식이 종로구 신교동소재 우당기념관에서 17일 개최된다.

우당 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회장 홍일식)는 16일 손용호 북부보훈지청장, 남만우 광복회 부회장, 이종걸 국회의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회영 선생은 한말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의 4남으로 일제에 국권이 침탈당하자 1910년 재산을 처분하고 6형제 40명의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10년 만주 유하현 삼원보 추가장(柳河縣 三源堡 鄒家莊)에 정착한 선생은 1912년에 이주 동포를 위해 자치기구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고,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신흥무관학교의 전신)를 설립해 독립군 양성에 기여했다.

또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됐으며, 1924년 4월 류자명, 이을규, 백정기 등과 함께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해 정의공보를 간행했다.

1931년에는 정해리, 김광주 등을 중심으로 조직한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과 관계를 맺고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32년 독립운동 세력 규합과 일군사령관 암살 등을 목적으로 대련(大連)행 기선을 타고 만주로 가던 중 일경에 체포돼 고문으로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009.11.16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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