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독립을 위해서는 먼저 백성을 깨우쳐야한다.

[한국경제신문] 500년 명문가에서 배우는 경영

woo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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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명문가에서 배우는 경영(31)-국난기마다 리더 배출한 백사 이항복 가문

제대로 된 ‘역할모델’ 덕분…‘타협’ 몰라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앞장… 탁월한 위기 관리자 배출

현대는 안보 전쟁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보 전쟁은 국방뿐만 아니라 산업 분야에서도 치열하다. 더욱이 산업 안보는 인재 전쟁에 다름 아니다. 이 때문에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있는 국정원에는 산업 안보가 주요한 업무로 자리 잡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 스파이들은 불안한 직장인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그들을 유혹한다. 그 유혹에 수많은 직장인들이 중국 등 적과의 동침을 택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연봉 5000만 원 받던 직장인에게 중국 업체가 ‘연봉 1억 원에 주택과 승용차 제공’을 내세운다면 흔들리지 않을 직장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 중국에는 이러한 유혹을 이기지 못해 ‘생계형 산업스파이’이가 된 한국인 엘리트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이 한번쯤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내걸고 만주를 누볐을 독립투사를 생각해 본다면 절로 가슴이 미어질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비단 특권층만의 의무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이었다면 현대에는 국방뿐만 아니라 산업 안보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생계형 산업스파이들은 자신의 가슴속에서만큼은 결코 ‘비애국’의 낙인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경주 이씨 가문에서 하나의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국난기마다 걸출한 리더를 배출했다는 사실이다. 13~14세기에 익재 이제현(1287∼1367)이라는 대문장가를 배출했고 16~17세기에는 백사 이항복(1556~1618년)이라는 청백리를 낳았다. 그리고 300년 후에 다시 항일운동사에 큰 획을 그어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된 이유승(고종 때 이조판서)의 6형제를 배출했다. 백사의 11세손인 이들 6형제는 백사의 4형제 중 2남 이정남의 후손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거의 300년을 주기로 국난이 발생했는데 이때마다 당대의 핵심 인재가 경주 이씨 가문에서 배출됐다는 점이다. 이제현 이항복 이회영 등이 국난 극복에 앞장서면서 가문의 영광을 300년마다 재현한 것이다.

이유승의 6형제는 1910년 나라가 망하자 12월 혹한에 4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6형제가 처분한 가산은 당시 화폐로 총 40만 냥이었다.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6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넷째인 우당 이회영은 이들 형제들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시피 했다. 그는 석주 이상룡과 함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는 데 앞장섰다. 우당은 22년 뒤 1932년 일경에 붙잡혀 고문으로 숨졌다. 재산가였던 둘째 이석영은 1만 석의 가산을 팔아 망명 생활비와 신흥학교 운영비 등에 자금을 지원했다.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 자금으로 쓴 후 상하이에서 사망했다. 이석영은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의 양자로 갔다 유산을 상속받아 거부가 됐다.

광복 후 6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이는 다섯째 성재 이시영(1869~1953)뿐이었다. 5형제와 그들의 아들 등 대부분이 독립운동을 하다 죽거나 실종됐다. 성재는 귀국 후 이승만 정권에서 초대 부통령까지 지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성재의 처신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전횡을 일삼자 성재는 1951년 부통령직에서 미련 없이 사임했다. 반면 성재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우당장학회를 설립하고 신흥대학(경희대 전신)을 세워 만주에서의 신흥학교를 계승하려 했다.

성재의 삶에서 350년의 시공간을 넘어 백사 이항복의 삶이 중첩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어쩌면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백사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재현해 보여준 것은 아닐까.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제대로 된 ‘역할모델’이 있을 때 이를 본받으려는 모습으로 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가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역할모델이 많은 가문이나 기업, 국가일수록 위기 때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기 관리자를 더 많이 배출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생계형 산업스파이를 하고 있는 한국의 엘리트들도 자신의 역할모델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밥벌이를 내세워 불의와 타협할 수 있었을까….

한국경제신문 2007년 5월 3일
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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