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독립을 위해서는 먼저 백성을 깨우쳐야한다.

[문화일보] 새롭게 보는 광복61돌 특집-독립운동가 후손들의 현실

woo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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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삶’에 지쳐버린 후손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도 있듯 팍팍한 삶에 지 친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많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20평 남짓한 좁은 아파트에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여성가장 구묘정(47)씨는 파출부, 식료품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고등학생 아들과 뇌를 다쳐 경제 능력을 상실한 남편(장애 3급)까지 식구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 과로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진 시동생은 벌써 10년째 식물 인간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다. 쉴 새 없이 일해도 부족한데 그나 마 일거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독립유공자인 시아버지에게 나오 는 연금이 없다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사실 아버님의 연금으로 온가족이 먹고 사는 셈”이라며 “독립운동하다 옥살이까지 하시고 평생 자녀들 키우느라 고생하 신 아버님께서 아직도 무거운 짐을 덜지 못하고 계셔 죄송할 따 름”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구씨의 시아버지는 애국지사 이병호(81) 선생. 그는 일제시대 개 성공립상업학교 시절부터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운동 자금 운반 등을 담당했다. 조선독립민족주의노동당에서 활동하며 일제에 맞 서 개성 소년형무소를 점령하려다 체포돼 5년형을 선고받고 서대 문 형무소에서 옥살이도 했다.

하지만 그는 독립운동 경력을 숨긴 채 묵묵히 살아왔다. 크게 자 랑할 것도 없다고 여겼고 무슨 대우나 동정을 받길 바라지도 않 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을 발굴하지 못하고 스스로가 독립유공자임을 입증해야 하는 현실도 한몫했을 터이다 .

그러다 아들들이 차례로 사고를 당하고 먹고살 길이 막막해져 주 위 사람들의 권유로 1986년에야 증거자료를 제출하고 독립유공자 로 인정받았다. 그는 “나는 재판기록을 정부문서보관소에서 찾 아내 쉽게 인정을 받았지만 증거서류가 없는 이들은 애를 많이 먹는다”며 안타까워했다.

막상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긴 했으나 정부의 예우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1986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는 그는 “사실 대통령표창이야 쓰레기 수거만 열심히 한 사람도 받을 수 있는 것인데 목숨 걸고 독립운동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가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다”며 “뒤늦게 정부가 법을 개정해 19 90년 건국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군인과 공 무원, 사립학교 교원 연금은 재정이 바닥나도 정부가 매년 몇조 원씩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에 비하면 독립유공자 에 대한 지원은 너무 박한 것이 현실”이라고 씁쓸해했다.

며느리 구씨는 “열심히 일하면서 남의 도움받지 않고 살고 싶은 데 돈 문제로 어쩔 수 없이 관공서에 갈 때마다 부끄럽다”며 “ 일시적인 금전 지원보다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일 자리를 소개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을 돕는 유일한 장학재단인 우당장학회 윤홍묵 이사는 “매년 3·1절과 8·15에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초청해 독 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등을 방문하고 장학금도 전달하고 있다 ”며 “경제적 형편이 매우 어렵고 조상의 공적을 기리는 장소에 가볼 여유도 없는 후손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나키스트와 좌익 계열 인사들은 여전히 이념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독립유공자 대열에서 소외돼 있다”며 “광복 이전 사망한 독립유공자는 3대, 광복 이후 사망한 유공자는 2대까지 만 연금을 주고 형제·자매가 여럿이어도 한명에게만 혜택을 주 는 등 보상 기준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2006-8-14 정희정기자 nivo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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