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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중국 뤼순 ‘동아시아 평화론…’ 학술회의

woo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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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향’ 누명 쓴 동양평화론 다시 보기
중국 뤼순 ‘동아시아 평화론…’ 학술회의
안중근·이회영·신채호 등 항일운동가 사상 재조명
“모든 민족 독립·평등 주장…일본 맹주론과 달라”

조심스럽다. 자칫 민감한 뇌관을 건드리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창작과 비평>이 동아시아 담론을 처음 들고 나왔을 당시에도 그랬다. 동아시아의 문명적 자산에 주목하고, 공통의 역사 경험에 기초한 지역 연대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학계 일각에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론의 복제물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던 것이다. ‘하얼빈 의거’ 100년을 맞아 최근 학계의 집중 조명을 받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역시 마찬가지다. ‘100년 뒤의 현실을 예견한 선구적 통찰’이라는 찬사가 있는 반면, 19세기 일본 아시아주의의 영향을 받은 탓에 인종주의와 일본맹주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25일 ‘동아시아 평화론의 현대적 조명’이란 주제로 단국대 동서문화교류연구소와 우당기념사업회가 중국 뤼순에서 마련한 학술회의는 동양평화론에 드리운 ‘일본발 아시아주의’의 그늘을 걷어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 행사가 주목한 인물은 안중근(1879~1910), 이회영(1867~1932), 신채호(1880~1936)다. 출생지와 생몰연대는 다르지만 세 사람은 모두 중국 뤼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항일운동가들이다. 이들을 묶는 공통점은 이것 말고도 많다. 실력 양성을 위한 교육운동에 투신했다는 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무장 투쟁을 적극 옹호했으며, 무엇보다 주권의 평등에 기초한 동아시아의 평화상태를 꿈꿨다는 사실도 일치한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세 사람 모두 개인과 국가들 사이의 불평등을 없애는 것이 평화를 이룩하는 길이라 생각했던 인물들”이라며 “이 점에서 일본의 동양평화론과는 그 내용이 전혀 달랐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을 강점한 뒤 서양에 맞서는 것을 동양평화라고 주장했지만, 세 사람은 모든 민족이 독립된 상태에서 주권을 갖고 평등하게 지내는 것이 동양평화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이 특히 주목한 것은 이회영과 신채호의 동양평화론이다.

이들의 평화주의는 일본의 침략논리로 활용된 동아시아주의와 달리 그 뿌리를 사회진화론이 아닌, 아나키즘에 두고 있었다고 보기 때문인데, 이 소장은 “개인과 모든 결사체가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체제가 진정한 평화체제라는 사상을 이회영과 신채호는 갖고 있었다”고 강조한다.

박걸순 충북대 교수는 동방피압박민족의 연대를 통해 동양평화를 이룩하려 한 ‘동방의 혁명가’ 신채호와 그의 아나키즘 사상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신채호의 무정부주의 수용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은 교정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채호가 아나키즘을 받아들인 것은 “자신이 조선의 크로폿킨이 되어 아나키즘을 조선 현실에 적합하도록 변용하여 수용하는 ‘주의(主義)의 선변(善變)’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신채호의 아나키즘 사상이 운동론의 차원으로 구체화된 것이 ‘동방피압박민족연대론’이다. 박 교수는 “신채호는 일본의 동양주의가 서양의 침입을 핑계로 한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이라 간파했다”며 “그가 구상한 동양평화의 핵심은 조선의 독립이며, 동방의 식민지·반식민지 민중과의 연대를 통해 이를 달성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명섭 단국대 교수는 이회영의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상에 담긴 실천적 의미를 되짚었다. 김 교수가 볼 때 이회영 사상의 핵심은 “자유·평등의 원리에 따라 민족자결을 완수하고, 민족 간 연합을 통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실현한다”는 것으로 중국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접하게 된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의 영향을 받아 형성됐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회영이 독립운동의 궁극적 목적을 하나의 세계(대동의 세계)를 만드는 데 두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이회영에게 있어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는 양자택일의 배타적 관계가 아닌 보완관계에 있었다”며 “그의 균형적 세계인식은 경쟁과 대립이 격화돼 가는 오늘날의 동북아 정세에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고 평가했다.

2009-11-27 한겨레신문
뤼순/글·사진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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