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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노블레스 오블리주’ 독립운동가 이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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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독립운동가 이회영
17일 순국 77주기 … 독립운동에 명문대가 6형제 목숨 바쳐

17일은 우당 이회영 선생이 77년전인 1932년, 일본 경찰에게 고문을 당하고 옥중에서 순국한 날이다. 후손과 따르는 이들이 17일 오후 4시 서울 종로 우당기념관에 모여 추모식을 갖는다.
이회영 선생은 독립운동가 가운데서도 ‘노블레스오블리주(사회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인물로서 단연 돋보인다.
이회영 선생의 집안은 10여명의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였으나 나라를 잃자 모든 것을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한다.
막대한 재산을 처분하고 노비를 해방시킨 뒤 6형제가 모두 가족 40명을 이끌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가운데 5형제가 항일전선에서 고문이나 굶주림 등으로 목숨을 바쳤고, 다섯째인 이시영 선생만이 살아서 해방을 맞았다.특히 이회영 선생은 40대 초반에 독립투쟁의 길에 들어선 후 나이가 들수록 더욱 완강한 무장의혈투쟁 노선을 견지함으로써 독립운동의 기세를 높인 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회영 선생의 6형제는 처분한 재산을 모두 쏟아 부어 오늘날 경희대의 전신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약 3000여명의 독립투쟁 간부를 길러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이후 봉오동 청산리 전투를 이끌었고 나중에 광복군의 주력도 이들이 맡았다.
일제의 탄압이 더욱 극심해지자 이회영 선생은 신채호 선생 등과 연대하여 아나키스트 운동을 벌이면서 일본군 지휘부를 직접 암살하는 활동을 조직한다. 1924년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고 1928년 남경에서 동아시아 각국의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결성에 참여하며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을 통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7일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홍일식 회장)가 주관한 추모식에서 우당장학회(윤장순 이사장)는 독립운동가 후손 50여명에게 50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동안 꾸준히 애국인사들의 후손들 가운데 필요한 이들에게 장학금을 주어왔다.
후손인 이종걸 의원 등이 참석하며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와 광복회원 등 200여명이 함께 추모할 예정이다.

2009-11-17 오후 12:16:08 게재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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