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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이회영과 루쉰, 80년 뒤 손자들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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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손자 저우링페이가 우당기념관을 찾아 우당 선생 손자인
이종찬 의원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2003.
2. 27)



 






일제시대 아나키즘 사상가였던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1867-1932)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중국 현대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작가 루쉰(魯迅.1881-1936)을 만났다.
이들의 교제는 짧은 기록으로만 확인된다.
그러나 이 인연으로 26일 오후 서울에서는 두 사람이
의미있는 만남을 가졌다. 손자들인 이종찬(李鍾贊) 전 국정원장과 중국 인민일보 편집간부인 저우링페이(周令飛.49.상하이
루쉰문화발전센터 주임)씨로, 두 사람은 종로구 신교동 우당기념관에서 만나 조부들을 추억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현재 우당장학회
명예이사장인 이 전 원장은 "할아버지가 1922년 베이징(北京)에서 저우수른(周樹仁) 베이징대 교수와 함께 사상문제를 연구했다는 기록을
봤지만 이것이 루쉰의 본명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인민일보 대표단의 일원으로 방한한 저우
주임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이 루신의 일대기를 다룬 단행본과 여기에 살린 가족사진을 보여주자 저우 주임은
아버지 저우하이잉(周海)을 가리키며 "현재 75세로 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이고 건강하시다"라고 소식을 전했다.
저우 주임은
"중국의 루쉰박물관에는 할아버지의 육필 원고 100여점과 작고 당일 일본인 의사가 만든 데드마스크 등이 대부분 국보로 보존되고 있는데,
앞으로 한국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 원고들이 한때 마오쩌둥(毛澤東)의 처인 장칭(江靑)에게 압수당하고 이로
인해 할머니 쉬광핑(許廣平)이 충격으로 심장병이 발작, 세상을 떠났으나 그뒤 중국 정부의 관리하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그는
할머니가 일본군에게 고문을 당하면서도 할아버지의 유물을 끝까지 감춰둬 보존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이사장은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난 개인적 인연으로 매년 한 차례 중국을 방문하며, 재개
발로 헐릴 옛집에도 최근 일가족과 함께 다녀왔다"며 루쉰의
유품과는 달리 이회영 선생의 사진이 2장 밖에 남아 있지 않은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국내에도 루쉰의 팬이 많다"며
"서울에서 루쉰 전시회와 기념학술행사 등을 적극 추진해 루쉰 연구자들이 흥미를 갖고 더욱 발전하도록 돕자"고 화답했다.


[연합뉴스  200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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