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우당기념관 > 애국지사34인

 

 

 

 

 

 

 

 

 

 


경북 유림대표, 경학사. 신흥강습소 설립운영에 참여 부민단 조직. 서로군정서 참모장. 통의부 조직. 국민대표대회의장. 정의부 참모장. 행정위원. 민족유일당 촉진회 위원장. 피체, 10년형 선고, 옥사.



의열단에 가입. 황포군관학교 졸업. 19로군에 가담. 남화한인청년연맹가입. 육삼정 의거에 가담. 유길 일본공사 암살사건에 참여. 피체, 18년형 선고. 복역.



3.1운동 참가. 북경 망명,운남군관학교 졸업, 김좌진과 신민부 개편정비. 재만한족총연합회 결성 조직. 군사부위원장 역임. 우당과 무정부주의 문제로 담론을 펼침.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 연맹조직 활약 중 피살.



호명학교 설립, 광복단가입, 무오독립선언서 서명, 정의부 개편, 북로군정서 조직 총사령관역임, 사관연성소 설치, 청산리전투 지휘, 대한독립군단 조직, 한족 총연합회 조직 주석역임, 좌익분자에 피살



유림대표로 파리만국회의에 보내는 진정서 지참. 상해 망명, 임정 의정원 의원. 서로군정서 선전위원장, 임정 의정원 부의장, 피체, 14년형 선고, 해방 후 성균관대 창립. 초대 총장 역임. 이승만 하야 경고문사건으로 복역.[천고]발간.



육군 대위. 신민회에 가입.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참여. 교관. 대한독립단 결성, 통의부 조직, 사령장 역임, 민족혁명당 조직 참여. 김원봉과 좌익숙청, 조선혁명당으로 재조직.



경인지역 일제기관 파괴 공작. 서로군정서 연락 활동.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 연맹가입. 동방무정부주의자 연맹 한국대표로 가맹. 한족총연합회 가담. 항일구국연맹산하의 흑색공포단”조직 일군 수송선 병영.



신흥무관학교 특별과 제 1회 수료, 본교 운영에 조력. 중국 통주의 협화대학에서 수학 후 귀국, 해외 독립운동지원. 중앙고보 교원재직. 해방 후 고려대 교수 재직. 주 필리핀 특명대사. 외무부장관. 국무총리역임.

[외교여록][나의조국][기독교와조상숭배론][한국동화와시조영역][영문논어] 저술.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주필. 신민회 참여, 대한독립청년단 조직. 임정수립에 참여. 의정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의열단 선언문 기초, 동방무정부주의자 연맹 가담. 피체. 10년형 복역 중 옥사.[조선상고사][조선상고문회사][조선사연구초]저술.



육군 정위, 대동청년당 조직. 무오독립선언서 서명, 서로군정서에 가담. 신흥무관학교 교관. 통의부 사령장. 군사위원장. 격전 중 전사. 그는 별호를 동천이라 하여 이청천, 김경천과 함께 독립군 인재의 삼천으로 불림



신민회 조직 및 교육사업에 참여. 고종황제의 국외 망명기도사건에 참여, 민족교육운동, 물산장려운동, 청년육영사업운동, 신간회 운동 등 다방면으로 민족 독립운동에 공헌. 1932 조선일보 제7대 사장 역임.



의열단가입. 상해 입달학원 교장, 중국 농업발달에 기여, 중국국민당간부 오치휘, 이석증과 협의하에 대일공동투쟁 전개. 재중국무정부주의자 연맹가입. 중한전시공작대 조직. 해방후 중국대학 교수, 중국원예학회 명예회장.



삼동청년학원의 우당과 주시경문하에서 수학.
1913년 우당이 국내에 잠입하여 일농의 집에 은신함, 우당의 명을 받아 협성학교, 조선어학회, 기독청년회를 거점으로 국내 저항운동에 헌신함.



육군부위. 상동청년학원 교사. 신민회 조직에 참여, 안동협동학교 교사로 과견. 독립군기지 물색 경학사 조직 및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참여. 교관 역임.

 


신민회 가입. 경학사 및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참여, 신규식의 동제사조직에 가입. 임정의정원 의원, 외무부 위원. 조소앙과 한국광복진선에 가입.



상동청년회 조직 참여. 용정에 이상설과 서전의숙 설립참여 후 귀국, 신민회발기 및 조직. 만주로 망명. 경학사, 신흥무관학교 설립 참여. 임정조직 참여, 임시의정원 의장. 국무총리. 주석 역임



이회영, 이동녕, 주진수, 장유순과 함께 유아현 삼원보 추가가를 독립기지로 선정. 경학사 조직, 신흥강습소 설립에 참여, 신흥무관학교 교장. 부민단, 한족회조직, 군정부 설립 및 독판취임. 이청천, 신팔균, 양규열, 김동삼 등과 독립군 양성에 주력



한말 성균관장. 탁지부 재무관 역임. 대한협동회 회장. 만주 용정에 서전의숙설립. 우당 이회영의 헤이그밀사 파견 거사 계획으로 부사 이준 이위종과 함께 정사로 활약, 이동휘와 권업회를 조직. 그 기관지로 권업신문 발행하고 주간을 맡음.



최창한, 이기춘, 김경선 등과 함께 독립단 조직. 군자금 모집 활약, 의열단 입단. 나석주 의사 사건에 가담, 피체, 15년형 선고 받고 14년간 복역



의친왕 망명을 기도한 대동산 사건가담.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 연맹조직.「정의공보」간행. 동방무정부주의자 연맹조직.[동방][탈환]간행. 한족총연합회 조직 참여, 해방 후 자유사회건설자 연맹 대표. 감찰위원회 감찰위원, 민주사회당 대표 역임.



한인 재일학생조직인 학우회 참여, 2.8 독립선언 참여.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 연맹 조직. 동방무정부주의자 대회 개최. [동방]지 간행. 해방 후 자유사회건설자 연맹 참여, 성균관대 총장 역임.



무한한인혁명청년회 조직, 임정군자금 모집, 피체 2년간 옥고, 출옥 후 천진 망명, 조선혁명당총동맹 가입, 한인학교 개설.



상동교회 목사, 상동청년학원 설립 . 신민회 발기 및 조직. 105인 사건으로 투옥 고문끝에 작고.



중국 망명, 동제사 조직. 시대일보,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국혼 진흥 주력. 연희전문, 이화여전 교수, 해방 후 국학대학장, 초대 감찰위원회 위원장. 「조선사 연구」「예원문존」저술.



상해 망명, 이을규, 백정기 등과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조직. 항일구국연맹 조직 참여, 남화한인청년연맹 참여. 한중합동유격대 전시공작대 편성.



북경 망명, 무오독립선언에 참여. 임정수립에 참여, 내무부장. 수석국무위원, 한인애국단.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직 참여, 한국광복진선 조직 및 운영,



흥선대원군 둘째 사위, 병과 급제, 부승지, 제학대사성, 이조참의, 직제학, 예조참판등 역임, 궁내부 대신으로 재직 중 합방조서와 고유문을 찢고 남작 제수를 거절. 자결미수, 우당과 고종황제 망명을 위해 북경에서 활동.



일본육사 졸업, 만주망명, 신흥무관학교 교성대장. 서로군정서조직 가담. 총사령역임. 청산리전투 참가. 정의부, 광복군 총사령 역임.



3.1운동 가담 후 상해망명, 임시정부 수립 참여 및 법무위원 역임 .1920년 귀국, 동아일보 창간동인으로 입사. 재차 북경 활동 후 귀국, 동아일보 경제 부장 신간회 발기인.



신흥무관학교와 국내독립운동 진영간에 연락 활동, 3.1운동 주도로 복역. 백담사 은둔 생활, 무저항독립투쟁 주창. 조선불교유신론 제창[불교유신론][불교대전]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