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생애와 사상 > 아나키즘 학술대회 축사

 

 

 

 

 

 

 

 

존경하는 이문창선생, 조광해 선생
존경하는 蔣 剛先生을 비롯한 해외에서 참여하신 귀빈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귀빈여러분!

올해는 우리 나라가 광복 50주년을 맞이하는 매우 뜻깊은 해입니다. 우리가 광복 50주년을 맞는 그 상징적 의미는 각벌합니다.

지난 반세기를 회고하고, 앞으로의 반세기를 준비하는 하나의 분기점이자, 20세기를 마감하고 대망의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세기적 전환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광복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한반도는 미완의 광복상태로 남아있고, 지구촌 유일한 냉전체제로 남아있는 채, 분단 50년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민족적 숙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8월 한달 동안 각지에서 광복50년을 기념하기 위한 국제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전시성에 불과합니다. 광복전후의 상황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정부차원에서의 학술세미나 하나 제대로 계획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현정부의 역사의식 결여를 입증하는 실례라 하겠습니다.

광복50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지나온 반세기를 겸허히 성찰하고 앞으로의 한 世紀, 21세기를 준비해야 하는 이 시기에 국민문화연구소와 자유사회 운동연구회 주관아래 한국 아나키즘 운동의 궤적과 21세기의 전망이란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회의 주제인 아나키즘운동은 우리 나라 독립운동선상의 분열상황을 극복하고 보다 적극적이고 투쟁적으로 행해졌던 일제하 독립운동의 한 방편이었습니다.

저의 조부이신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 어른께서도 이 운동의 선봉에 서신 분 중의 한 분으로써 아나키즘 운동의 이론에 입각하여 조선의 독립을 쟁취코자 할뿐 아니라 나라가 독립이 된 이후에도 아나키즘을 완전한 자유와 지방자치운동이라는 기조 위에서 내션빌딩(Nation Building)의 한 모델로 구상하셨던 것입니다. 조부께서는 더 나아가 아나키즘 운동의 이론과 원리가 한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대된다면 조선의 자주독립 뿐 아니라 인류의 항구적 자유와 평화와 번영이 보장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고 이 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사실, 한국에서의 아나키즘 운동은 그 동안 세계적인 냉전구조와 남북분단상황 속에서 그 연구작업과 평가가 올바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한국에서 발행되는 정치학 사전에서도 아나키즘을 일본식 번역을 그대로 원용, 무정부주의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아나키즘은 세기말적인 허무주의, 아니면 파괴만을 일삼는 극단적 행동주의, 또는 테러리즘으로 잘못 오인된 예가 많았습니다. 오늘 아침 어느 신문 사설에서도 우리 나라의 손꼽히는 애국지사인 申采浩先生이나 李會榮先生이 한때 무정부주의 운동에 기울였다해서 그들을 민족지도자의 반열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가?라고 보도했습니다. 이 역시 아나키즘에 대하여 우리 정부당국부터 얼마나 무지한가를 단적으로 나타낸 예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항일 독립운동기인 1920년대에 수용된 한국의 아나키즘은 일본의 동아시아 패권주의와 식민통치에 맞서기 위한 하나의 저항이론으로 출발하여 아직도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격동하는 세계질서를 돌이켜보건대,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패권주의가 첨예화되어 있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조차 개인의 자유를 억압적인 힘으로 짓누르는 중앙 정치권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족평등의 이상사회를 지향함과 동시에, 정치에서의 민주화, 지방화가 이제 막 싹이 터서 새로운 기운으로 일어나려는 한국적 현실, 그리고 사회의 정의가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현 시점에서, 한국의 아나키즘의 현주소를 다시 자리매김 하는 작업이야말로 시의 적절하다 하겠습니다. 바르지 못한 정치, 바르지 못한 정부를 배격하고 인간의 자유와 창의를 보장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자는 신 아나키즘운동이 이제는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를 잡게 되기를 바랍니다.

뒤늦게나마 한국에서의 아나키즘 운동에 관한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우리 독립운동사 뿐만 아니라 자유사회를 지향했던 선각자들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확인하는 아나키즘의 본래의 정신이 올바르게 평가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이번 행사가 성공되기를 기원하면서 특히 외국에서 오신 내빈들께서 유익한 시간을 많이 갖게 되기를 希望합니다.


감사합니다.


1995년 8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