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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4년 우당선생순국 72주기 추모행사 (정동영 통일부장관 추모사)
작성자   
woodang
[ 2004-12-20 12:02:43 ]    

 

우당선생은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나라가 기울어가는 정세 속에서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일컬어지는 명문대가(名門大家)출신으로 부귀영화의 길이 보장되었지만 이를 흔연히 버리고 구국운동에 몸을 바친 애국자요, 혁명가이셨습니다. 당신 혼자서가 아니라 6형제 일가족을 이끌고 눈보라 몰아치는 북만(北滿)으로 망명하여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길을 선택하신 우리나라의 보기 드믄 ‘노블리스 오브리제’의 산 표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과거사를 새롭게 재정립하자는 것도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만을 규명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역사이면서도 미처 밝히지 못한 역사도 재조명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우당선생의 혁명적인 삶과 사상은 분명하게 다시 정립하여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근에야 새로 출간되는 서적과 자료를 통하여 또 방송을 통하여 우당선생의 기록들을 읽었습니다.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는 “우당선생의 가문에 나라가 큰 빚을 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해방되고 건국된 나라에서 일찍이 이런 빚을 갚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근대사는 이를 외면한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오히려 우당선생을 항일 혁명가 대표로 표창한 것은 한층 더 우리를 숙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당선생의 유덕 가운데 몇 가지만 강조하고자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선생은 당시 세계를 풍미한 공산주의나 극단적인 파시즘 모두 부인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평화 번영을 약속하는 제3의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북경대학에 있는 중국의 대표적 문인, 루신(魯迅)이나 러시아 시인 에르셍코 등과 교유하면서 ‘자유협동 사상’을 부르짖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북경에 모여든 자식과 같은 연배의 젊은이들과 격의 없는 토론을 벌리기도 했습니다.

선생의 이런 사상이 그 후 좌우 양측으로부터 협공을 받아 오늘까지 선생의 위대한 삶과 업적이 묻히게 된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다시 옷깃을 여미며 선생의 위대한 발자취를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이 모임은 선생의 유덕을 단순히 기리는데 끝이지 않고 그분의 정신이 오늘에 살도록 하자는데 그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당기념사업회와 우당기념관을 중심으로 더욱 많은 추모사업과 연구 성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당 선생님!
선생님께서 돌아가신지 70여 성상(星霜)이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 선생의 유덕을 기리면서 또 한편 미처 깨닫지 못한 어리석음이 많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늦게나마 많은 후학들이 선생의 위대한 가르침을 다시 새기고 있음을 고유하는 바입니다. 이 자리에도 조광해 교수, 이문창 선생, 서중석 교수 이덕일 교수, 조영헌 교수, 구승회 교수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앞으로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리라 우리 모두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디 굽어 살피시고 영민하시기를 빕니다.

 

2004년 1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