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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한국일보_신흥무관학교와 육군사관학교
작성자   
woodang
[ 2017-12-13 17:06:13 ]    
20171213  한국일보_신흥무관학교와 육군사관학교

의열단 의백 김원봉과 항일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의 인연은 만주에서 시작됐다. 경남 밀양 사람인 김원봉과 평북 용천 출신의 김산이 한반도 북쪽 저 먼 곳으로 달려간 것은 거기 신흥무관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원봉은 중국 금릉대학을 다니다 말고 무장투쟁을 하겠다며 그곳으로 넘어갔다. 그보다 일곱 살 어린 김산은 나이 열다섯에 입학했다. 입학 허용 연령을 세 살이나 밑돌았지만 입학시켜 달라고 울며 버틴 끝에 석 달짜리 단기 과정에 특례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나중에 상해에서 의열 투쟁을 함께 한다.
▦ 열혈 청년들의 가슴을 뒤흔든 신흥무관학교는 백사 이항복의 후손인 이회영 형제, 독립운동가 이동녕 그리고 안동 출신인 김대락 이상룡 김동삼 등이 서간도로 집단 망명한 뒤 항일전사를 키우기 위해 1911년 설립했다. 김산의 삶을 그린 ‘아리랑’에는 학과는 새벽 4시 시작하며 학생들은 게릴라 전술을 익히고 강철 같은 근육을 키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군사 교육뿐 아니라 국사와 지리 교육도 활발했다. 그러나 자금 부족으로 학생들 먹이고 입히기가 힘겨웠으며 학생들도 이를 알고 괭이질을 하며 농사일을 했다.
▦ 김경천 지청천 이범석 등 교관들은 쟁쟁했다. 일본 육군을 탈출한 김경천은 훗날 흰 말을 타고 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누벼 ‘백마 탄 장군’ ’조선의 나폴레옹’으로 불렸다. 북한 김일성은 가짜고 김경천이 진짜 김일성이라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다. 역시 일본 육사 출신으로 요코하마의 묘지에서 김경천과 만나 조국 현실을 슬퍼하며 통곡한 지청천도 교관으로 합류했다. 중국 운남육군강무학교 기병과를 수석 졸업한 젊은 교관 이범석은 단연 학생들의 우상이었다. 그러나 학교는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에 1920년 문을 닫는다.
▦ 수천 명에 이르는 졸업생은 훗날 무장 전사 혹은 비밀결사대원이 돼 일제와 싸운다. 신흥무관학교가 없었으면 청산리대첩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자랑스러운 역사로 받아들여야 마땅하나 이상하게도 육군은 신흥무관학교와 독립군의 계승에 소극적이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친일 인사가 육군의 요직을 차지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있다. 그런 점에서 육군사관학교가 11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관련 학술대회를 연 것은 이례적이다. 육사는 학술대회에서 조명된 역사와 정신을 계승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